법무법인 창수 서초분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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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공사대금/유치권

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물가의 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이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와의 합의에 기초하여 계약당사자 사이에만 효력이 있는 특수조건 등을 부가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인지 여부(소극)

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2다74076 전원합의체 판결

[부당이득금반환등][공2018상,177]

【판시사항】

 

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물가의 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이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와의 합의에 기초하여 계약당사자 사이에만 효력이 있는 특수조건 등을 부가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인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다수의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이나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인 공기업이 일방 당사자가 되는 계약(이하 편의상 ‘공공계약’이라 한다)은 국가 또는 공기업(이하 ‘국가 등’이라 한다)이 사경제의 주체로서 상대방과 대등한 지위에서 체결하는 사법(사법)상의 계약으로서 본질적인 내용은 사인 간의 계약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법령에 특별한 정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계약을 체결하여야 하고 당사자는 계약의 내용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이행하여야 하는 등[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2012. 12. 18. 법률 제115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국가계약법’이라 한다) 제5조 제1항] 사적 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을 비롯한 사법의 원리가 원칙적으로 적용된다.

 

한편 국가계약법상 물가의 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계약상대자가 계약 당시에 예측하지 못한 물가의 변동으로 계약이행을 포기하거나 그 내용에 따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여 공공계약의 목적 달성에 지장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공공계약의 특성상 계약 체결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시점에서 계약금액을 구성하는 각종 품목 또는 비목의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거나 하락한 경우 계약담당자 등으로 하여금 계약금액을 조정하는 내용을 공공계약에 반영하게 함으로써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계약상대자에게 부당하게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지 않으려는 뜻도 있다.

 

따라서 계약담당자 등은 위 규정의 취지에 배치되지 않는 한 개별 계약의 구체적 특성, 계약이행에 필요한 물품의 가격 추이 및 수급 상황, 환율 변동의 위험성, 정책적 필요성, 경제적 변동에 따른 위험의 합리적 분배 등을 고려하여 계약상대자와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합의를 할 수 있다. 계약금액을 구성하는 각종 품목 등의 가격은 상승할 수도 있지만 하락할 수도 있는데, 공공계약에서 위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특약을 한 후 계약상대자가 이를 신뢰하고 환 헤징(hedging) 등 물가변동의 위험을 회피하려고 조치하였음에도 이후 물가 하락을 이유로 국가 등이 계약금액의 감액조정을 요구한다면 오히려 계약상대자가 예상하지 못한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점에 비추어도 그러하다.

 

위와 같은 공공계약의 성격, 국가계약법령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내용과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할 때, 위 규정은 국가 등이 사인과의 계약관계를 공정하고 합리적·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계약담당자 등이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한 데에 그칠 뿐이고,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와의 합의에 기초하여 계약당사자 사이에만 효력이 있는 특수조건 등을 부가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사적 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상 그러한 계약 내용이나 조치의 효력을 함부로 부인할 것이 아니다.

 

다만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국가계약법 시행령’이라 한다) 제4조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국가계약법령 및 관계 법령에 규정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 또는 조건을 정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공공계약에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은 효력이 없다. 여기서 어떠한 특약이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에 위배되어 효력이 없다고 하기 위해서는 그 특약이 계약상대자에게 다소 불이익하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에 반하여 형평에 어긋나는 특약을 정함으로써 계약상대자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인지는 그 특약에 의하여 계약상대자에게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불이익 발생의 가능성, 전체 계약에 미치는 영향, 당사자들 사이의 계약체결과정, 관계 법령의 규정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관 고영한, 대법관 김재형의 반대의견] 국가계약법령은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의 요건과 효과에 관하여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다. 공공계약 체결 후 계약금액을 구성하는 각종 품목 등의 가격이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으로 급격하게 상승하면, 상대방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계약의 이행을 중단·포기하여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계약을 부실하게 이행할 우려가 있다. 반면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으로 위와 같은 품목 등의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면,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공공계약의 특성상 국가나 공공기관의 예산이 불필요하게 과다 집행될 수 있다.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으로 인해 계약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좌절되거나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들지 않도록 하고 적정 예산이 집행되도록 하려는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계약담당공무원에게 계약 체결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시점에서 계약금액을 구성하는 각종 품목 등의 가격 변동을 반영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 도입된 것이다.

 

공공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약정으로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미리 배분하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계약법 제19조는 그러한 약정을 허용하는 것보다 조정을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법적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러한 입법이 헌법에 반한다거나 감당할 수 없이 부당한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국가와 그 상대방은 이에 따라야 한다.

 

이 규정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은 ‘물가의 변동이나 환율변동으로 인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라는 법률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고 그 요건에 관해서는 법률의 위임에 따라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위 요건의 해석·적용과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있는 세부적인 규율을 통하여 계약금액 조정을 둘러싼 부당한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공공계약에 대하여 사적 자치와 계약 자유의 원칙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강행규정 또는 효력규정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공계약의 당사자인 국가와 그 상대방은 공공계약 체결 이후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에 따른 손실의 위험을 공정하고 형평에 맞게 배분하기 위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하여야 하고, 이를 배제하는 약정은 효력이 없다.

 

이러한 결론은 법 규정의 문언에서 명백하게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계약과 국가계약법의 성격, 입법 경위에서 알 수 있는 입법자의 의사, 법 규정의 체계와 목적 등에 비추어 보아도 타당하다.

 

【참조조문】

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2012. 12. 18. 법률 제115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조, 제5조 제1항, 제19조, 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2008. 2. 29. 대통령령 제2072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4조 제1항,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4조, 제64조 제7항, 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2009. 3. 5. 기획재정부령 제5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4조

 

【참조판례】

대법원 2001. 12. 11. 선고 2001다33604 판결(공2002상, 256)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2다15695 판결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5다206270, 206287 판결

【전 문】

【원고, 상고인】 경남기업 주식회사 외 1인

【피고, 피상고인】 한국토지주택공사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2. 7. 10. 선고 2011나75203 판결


【주 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점, 제2점에 관하여

가. 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2012. 12. 18. 법률 제115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국가계약법’이라 한다) 제19조는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공사·제조·용역 기타 국고의 부담이 되는 계약을 체결한 다음 물가의 변동, 설계변경 기타 계약내용의 변경으로 인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2008. 2. 29. 대통령령 제2072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4조 제1항 전문(전문)은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법 제19조의 규정에 의하여 국고의 부담이 되는 계약을 체결한 날부터 90일 이상 경과하고 동시에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때에는 재정경제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라고 규정한 후, 각 호에서 입찰일을 기준일로 하여 재정경제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산출된 품목조정률이나 지수조정률이 100분의 3 이상 증감된 때를 계약금액의 조정이 이루어지는 날로 정하였다. 또,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2008. 12. 31. 대통령령 제21202호로 개정되어 같은 날 시행된 것, 이하 ‘국가계약법 시행령’이라 한다)은 제64조 제7항으로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하여 제1항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요건이 성립된 경우에는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라는 규정을 신설하였고, 위 규정은 부칙 제2조에 따라 이 영 시행 당시 이행 중인 계약으로서 이 영 시행 전에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계약금액 조정요건이 성립된 경우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2009. 3. 5. 기획재정부령 제5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국가계약법 시행규칙’이라 한다) 제74조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과 관련하여 품목조정률과 이에 관련된 등락폭, 등락률의 산정방식 및 지수조정률 산정방식, 그리고 이를 적용한 조정금액의 산출방식, 선금을 지급한 경우 공제금액의 산출방식을 규정하였다.

 

그런데 국가계약법령은 그와 다른 내용으로 체결된 계약의 효력에 관하여는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나.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이나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인 공기업이 일방 당사자가 되는 계약(이하 편의상 ‘공공계약’이라 한다)은 국가 또는 공기업(이하 ‘국가 등’이라 한다)이 사경제의 주체로서 상대방과 대등한 지위에서 체결하는 사법(사법)상의 계약으로서 본질적인 내용은 사인 간의 계약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법령에 특별한 정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계약을 체결하여야 하고 당사자는 계약의 내용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이행하여야 하는 등(국가계약법 제5조 제1항) 사적 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을 비롯한 사법의 원리가 원칙적으로 적용된다(대법원 2001. 12. 11. 선고 2001다33604 판결 참조).

 

한편 국가계약법상 물가의 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계약상대자가 계약 당시에 예측하지 못한 물가의 변동으로 계약이행을 포기하거나 그 내용에 따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여 공공계약의 목적 달성에 지장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공공계약의 특성상 계약 체결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시점에서 계약금액을 구성하는 각종 품목 또는 비목의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거나 하락한 경우 계약담당자 등으로 하여금 계약금액을 조정하는 내용을 공공계약에 반영하게 함으로써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계약상대자에게 부당하게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지 않으려는 뜻도 있다.

 

따라서 계약담당자 등은 위 규정의 취지에 배치되지 않는 한 개별 계약의 구체적 특성, 계약이행에 필요한 물품의 가격 추이 및 수급 상황, 환율 변동의 위험성, 정책적 필요성, 경제적 변동에 따른 위험의 합리적 분배 등을 고려하여 계약상대자와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합의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계약금액을 구성하는 각종 품목 등의 가격은 상승할 수도 있지만 하락할 수도 있는데, 공공계약에서 위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특약을 한 후 계약상대자가 이를 신뢰하고 환 헤징(hedging) 등 물가변동의 위험을 회피하려고 조치하였음에도 이후 물가 하락을 이유로 국가 등이 계약금액의 감액조정을 요구한다면 오히려 계약상대자가 예상하지 못한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점에 비추어도 그러하다.

 

위와 같은 공공계약의 성격, 국가계약법령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내용과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할 때, 위 규정은 국가 등이 사인과의 계약관계를 공정하고 합리적·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계약담당자 등이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한 데에 그칠 뿐이고,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와의 합의에 기초하여 계약당사자 사이에만 효력이 있는 특수조건 등을 부가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사적 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상 그러한 계약 내용이나 조치의 효력을 함부로 부인할 것이 아니다.

 

다만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국가계약법령 및 관계 법령에 규정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 또는 조건을 정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공공계약에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은 효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특약이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에 위배되어 효력이 없다고 하기 위해서는 그 특약이 계약상대자에게 다소 불이익하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에 반하여 형평에 어긋나는 특약을 정함으로써 계약상대자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인지는 그 특약에 의하여 계약상대자에게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불이익 발생의 가능성, 전체 계약에 미치는 영향, 당사자들 사이의 계약체결과정, 관계 법령의 규정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2다15695 판결,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5다206270, 206287 판결 참조).

 

다.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실과 사정에 비추어 환율변동을 포함한 물가변동의 경우에도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기로 한 이 사건 공사계약특수조건(Ⅱ) 제15조(이하 ‘이 사건 특약’이라 한다)가 국가계약법 제19조의 입법 취지를 몰각시키거나 거래관행에 비추어 합리성을 현저히 상실하여 정의나 형평에 어긋난다고 보이지 아니하고, “공사계약특수조건에 회계규칙, 공사 관계 법령 및 이 조건에 의한 계약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내용이 있는 경우 특수조건의 내용은 효력이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정한 이 사건 도급계약의 공사계약일반조건 제3조 제3항을 위반하여 원고들의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한다고도 볼 수 없으므로 이를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1) 원고들은 2007. 4. 16. 아산배방지구 집단에너지시설 건설공사(이하 ‘이 사건 공사’라 한다)를 도급받기로 하는 이 사건 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2) 이 사건 도급계약의 내용에 포함된 이 사건 특약은 “입찰예정금액 중 국외업체와 계약하는 부분(이하 ‘국외 공급분’이라 한다)과 관련된 금액은 계약기간 중의 물가변동을 고려한 금액으로서 물가조정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이 필요하지 아니한 고정불변금액이므로, 입찰자는 입찰 전에 전 계약기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물가변동(환율변동 등)을 감안하여 입찰금액을 작성하여야 하고, 국외 공급분의 계약금액 고정에 대하여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였다. 위와 같은 내용은 이 사건 도급계약 체결 6개월 전에 개최된 현장설명회에서 원고들을 비롯한 참가기업들에 배부된 입찰안내서에도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3) 원고들은 장기간의 대형설비공사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많은 1군 건설업체로서 피고가 배부한 입찰안내서를 검토하여 위 조건을 포함한 계약조건을 잘 알면서 이 사건 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4) 원고들은 2007. 6.경 국외업체인 지멘스(SIEMENS)로부터 가스터빈을 매수하고 매매대금으로 스웨덴화 274,530,117크로나를 지급하였고, 2008. 1.경 국외업체인 에스.엔.엠(S. N. M)으로부터 스팀터빈을 매수하고 매매대금으로 일본화 623,278,000엔을 지급하였다.

(5) 원고 경남기업 주식회사는 2008년 발생한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환율이 상승하자 2009. 5. 7. 이 사건 도급계약의 계약금액 조정을 요청하였으나 이 사건 특약을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6) 이 사건 공사와 관련하여 계약금액이 고정된 국외 공급분의 예상 구입 및 설치금액은 전체 계약금액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였고, 나머지 금액에 대하여는 수차례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이 이루어졌다.

(7) 피고는 이 사건 도급계약의 공사계약특수조건(Ⅱ)에서 가스터빈과 스팀터빈의 공급업체의 범위를 제시하였을 뿐 결제통화를 특정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원고들은 외국기업과 스웨덴국 크로나화 및 일본국 엔화를 결제통화로 정하여 가스터빈과 스팀터빈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도 환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였다.

라.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따라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국가계약법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규정의 효력과 위 공사계약 일반조건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2.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하여

가.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이 사건 특약이 원고들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내용을 정하고 있는 약관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1) 이 사건 도급계약이 불공정한지는 계약체결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2) 이 사건 도급계약 체결일인 2007. 4. 16.에는 2008년경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크로나화와 엔화의 환율이 급격히 상승할 것을 예상할 수 없었다.

(3) 환율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원고들이 환차익 상당의 이득을 얻을 수도 있었다.

나. 관련 법리에 따라 기록을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불공정약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없다.

 

3. 상고이유 제4점에 관하여

원심은 이 사건 도급계약 체결 이후 환율이 원고들의 예상과 다른 방향과 폭으로 변동함으로써 원고들이 손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도급계약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법리에 따라 기록을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금액 감액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4. 결론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상고이유 제1점, 제2점에 관한 대법관 고영한, 대법관 김재형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었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창석의 보충의견, 대법관 조희대의 보충의견이 있다.

 

5. 상고이유 제1점, 제2점에 관한 대법관 고영한, 대법관 김재형의 반대의견

가. 다수의견은 국가와 계약상대자가 물가변동 또는 환율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에 관한 국가계약법령 규정과 달리 약정을 체결하더라도 계약상대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닌 한 무효로 볼 수는 없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국가가 스스로 따르겠다고 제정한 법령을 명백히 위반하여 체결한 계약을 유효라고 하는 것으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 상세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나. 계약 등 법률행위의 당사자들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거나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법규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법규에서 이를 위반한 법률행위의 효력을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규정에 따라 법률행위의 유·무효를 판단하면 된다. 법률에서 해당 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를 무효라고 정하고 있거나 해당 규정이 효력규정이나 강행규정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면 그러한 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는 무효이다.

 

이와 달리 금지 규정 등을 위반한 법률행위의 효력에 관하여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규정의 입법 배경과 취지, 보호법익, 위반의 중대성, 당사자에게 법규정을 위반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 규정 위반이 법률행위의 당사자나 제3자에게 미치는 영향, 위반 행위에 대한 사회적·경제적·윤리적 가치평가, 이와 유사하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에 대한 법의 태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그 효력을 판단하여야 한다. 특히 법률행위의 양쪽 당사자를 규율하는 법령을 위반하여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는 특별히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그 법률행위를 무효로 보아야 한다. 한쪽 당사자를 규율하는 법령을 위반한 경우에는 거래의 안전과 상대방의 보호를 고려하여 그 법률행위의 효력을 판단하여야 하는데, 그 법령의 주된 목적이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를 위반하는 법률행위는 원칙적으로 무효로 보아야 한다.

 

법질서는 모순이 없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금지하고 다른 쪽에서는 허용한다면 수범자로서는 어느 법률을 따라야 할지 알 수 없다. 법률에서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거나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한 법률행위를 유효라고 한다면 이는 법질서의 자기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별히 인정해야 할 다른 이유가 없는 한 억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법률을 위반한 법률행위의 효력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위에서 본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도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에서는 원칙적으로 그 효력을 부정함으로써 법질서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최후 보루로서 사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다. 국가계약법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함으로써 계약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제1조). 이는 공정하고 효율적인 공공계약에 관한 제도를 마련하여 시행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계약법 제19조는 ‘물가변동 등에 의한 계약금액 조정’이라는 제목으로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공사·제조·용역 기타 국고의 부담이 되는 계약을 체결한 다음 물가의 변동, 설계변경 기타 계약내용의 변경으로 인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그 위임에 따라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 제1항 전문(전문)은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법 제19조의 규정에 의하여 국고의 부담이 되는 계약을 체결한 날부터 90일 이상 경과하고 동시에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때에는 재정경제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라고 정하고, 각 호에서 입찰일을 기준일로 하여 재정경제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산출된 품목조정률이나 지수조정률이 100분의 3 이상 증감된 때 계약금액이 조정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4조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과 관련하여 품목조정률과 이에 관련된 등락폭·등락률의 산정방식, 지수조정률 산정방식, 그리고 이를 적용한 조정금액의 산출방식 등을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한편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 제7항은 2008. 12. 31. 개정 당시 신설된 것으로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하여 제1항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요건이 성립된 경우에는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계약법령은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의 요건과 효과에 관하여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다. 공공계약 체결 후 계약금액을 구성하는 각종 품목 등의 가격이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으로 급격하게 상승하면, 상대방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계약의 이행을 중단·포기하여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계약을 부실하게 이행할 우려가 있다. 반면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으로 위와 같은 품목 등의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면,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공공계약의 특성상 국가나 공공기관의 예산이 불필요하게 과다 집행될 수 있다.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으로 인해 계약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좌절되거나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들지 않도록 하고 적정 예산이 집행되도록 하려는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계약담당공무원에게 계약 체결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시점에서 계약금액을 구성하는 각종 품목 등의 가격 변동을 반영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 도입된 것이다.

공공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약정으로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미리 배분하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계약법 제19조는 그러한 약정을 허용하는 것보다 조정을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법적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러한 입법이 헌법에 반한다거나 감당할 수 없이 부당한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국가와 그 상대방은 이에 따라야 한다.

이 규정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은 ‘물가의 변동이나 환율변동으로 인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라는 법률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고 그 요건에 관해서는 법률의 위임에 따라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위 요건의 해석·적용과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있는 세부적인 규율을 통하여 계약금액 조정을 둘러싼 부당한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공공계약에 대하여 사적 자치와 계약 자유의 원칙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강행규정 또는 효력규정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공계약의 당사자인 국가와 그 상대방은 공공계약 체결 이후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에 따른 손실의 위험을 공정하고 형평에 맞게 배분하기 위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하여야 하고, 이를 배제하는 약정은 효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결론은 다음에서 보듯이 법규정의 문언에서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계약과 국가계약법의 성격, 입법 경위에서 알 수 있는 입법자의 의사, 법규정의 체계와 목적 등에 비추어 보아도 타당하다.

 

(1) 법령해석의 출발점은 문언해석이다. 법령의 문언과 달리 해석을 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허용된다. 특히 법률의 문언 자체가 비교적 명확한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원칙적으로 더 이상 다른 해석방법은 활용할 필요가 없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다81035 판결 등 참조).

국가계약법령은 위에서 보았듯이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에 따라 계약금액을 ‘조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조정한다’의 의미는 어감의 차이만 있을 뿐 일반적으로 ‘조정하여야 한다’와 같은 뜻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가능 또는 재량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한다’를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언에서 나올 수 있는 의미, 즉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난다. 그리고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는 것은 계약의 유·무효와 마찬가지로 ‘조정(조정)’이라는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의미에서 계약의 효력을 정한 것이다. 이 점에서 행정법규에서 개인이나 단체의 일정한 행위를 금지할 뿐이고 그 위반행위의 효력을 정하지 않고 있는 경우와는 다르다. 따라서 국가계약법령의 문언에 비추어 법령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물가변동이나 환율변동에 따른 계약금액을 조정하는 권리의무가 발생한다는 것은 명백하고, 이와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국가계약법령의 성격, 체계, 입법의도와 목적을 살펴보아도 이러한 문언해석을 뒤집을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이러한 문언의 의미와 다르게 법령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보호할 헌법상 기본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추구해야 할 가치나 이념이 있는 것도 아니다.

 

(2) 공공계약 자체는 사법의 영역에 속하고 그 성립, 이행과 소멸에 관해서는 원칙적으로 사법 규정이 적용된다. 그러나 공공계약이 사인 간의 계약과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거나 공공계약에서 국가 등이 사인과 동일한 지위에 서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일반 사인 간의 사법상 계약과 달리 공공계약과 관련한 재원은 국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그런데도 계약담당공무원이 항상 ‘최선의 계약 체결’이라는 동기를 갖는 것은 아니므로 부패와 비리, 자의와 전횡을 막기 위해 엄격한 법적 규율이 필요하다.

 

국가 등이 계약당사자인 경우에는 일반 사인 간의 계약과 달리 그 계약조건은 경비의 절감 못지않게 계약이행 결과의 건전성, 품질과 안전의 확보 등 공공 일반의 이익까지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대법원 2016. 11. 10. 선고 2013다23617 판결 참조). 현실적 측면에서 보면 공공계약의 상대방은 사인 간의 계약과 달리 대금의 수령에 관한 위험을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계약의 내용이 형평을 잃거나 부당한 점이 있더라도 이를 감내하고 계약을 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공공계약의 상대방을 누구로 정할지는 경제와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공공계약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된다.

 

이와 같이 공공계약에는 사법상의 계약과는 구별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공공계약을 규율하는 국가계약법령은 계약체결 단계부터 계약 내용의 성립과 실현에 이르기까지 공공성을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공익을 실현함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국가계약법령은 계약법을 보충하여 계약담당공무원의 재량을 적정하게 제한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공공계약에 직접 적용될 것을 전제로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국가 등이 체결하는 계약에 당연히 적용되고 이를 배제하는 약정은 무효라고 보는 것이 공공계약의 특성에 부합한다.

 

(3) 국가계약법령 규정은 주로 공공계약의 방법과 절차, 공공계약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 등에 관하여 규율하고 있다. 그런데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이미 체결된 공공계약 내용을 일부 조정하도록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에게 의무를 부여하면서, 변경될 계약의 내용을 직접 규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규정들과 구별되는 특색이 있다. 이는 공공계약에서 국가와 그 계약상대방의 거래상 지위의 차이와 그 남용 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민사법 원리를 일부 수정하여 계약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무원의 재량을 통제하여 계약의 이행과 실현 과정에서 공공성을 유지·확보하기 위한 규정이다. 따라서 중앙관서의 장 등에게 계약금액 변경에 관한 공익적 조정자 역할을 부여한 법령 규정을 무력화하거나 그러한 규정을 사전에 배제하는 약정은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규정을 단순히 이른바 행정기관의 내부적 규율이나 예산 관련 규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4) 국가계약법의 1차적인 수범자는 국가 등의 계약담당공무원이다. 중앙관서의 장이나 계약담당공무원은 당연히 계약의 자유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원리에 따라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기속된다. 국가계약법은 국가와 계약상대방의 계약관계를 물가변동과 환율변동에 따라 조정하도록 계약담당공무원에게 의무를 지우고 있다. 국가나 공무원이 이러한 법률상 의무가 있는데도 단순히 그에 어긋나는 조치를 한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그 의무 자체를 완전히 배제하는 특약을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는 것으로 민주주의원리와 법치국가원리에도 반한다. 국가의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법원은 국가나 공무원이 이러한 원리를 준수하도록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할 임무가 있다.

대법원은 개인이나 기업이 행정법규를 위반한 계약을 한 경우에도 그 계약의 효력을 부정한 사례가 많다. 가령 대법원은 부동산 중개수수료의 한도를 정한 구 부동산중개업법(2005. 7. 29. 법률 제7638호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과 같은 법 시행규칙 등은 중개수수료 약정 중 소정의 한도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사법상의 효력을 제한하는 이른바 강행규정에 해당하고, 따라서 구 부동산중개업법 등 관련 법령에서 정한 한도를 초과하는 부동산 중개수수료 약정은 그 한도를 초과하는 범위 내에서 무효라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7. 12. 20. 선고 2005다32159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은 공인중개사가 행정법규를 위반하여 체결한 계약을 무효라고 본 것이다.

계약담당공무원이 국가계약법 규정의 적용을 사전에 완전히 배제하거나 회피하는 약정을 함으로써 국가가 직접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개인이나 기업이 행정법규를 위반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보다 더욱 쉽게 그 계약의 효력을 부정하여야 한다. 계약담당공무원이 공공계약의 공정성·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하여 공공계약의 내용을 규제하려는 입법부, 나아가 민주주의원리와 법치국가원리에 어긋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그 위법성이 더욱 중대하기 때문이다.

 

(5)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1977. 4. 1. 대통령령 제8524호로 개정된 구 예산회계법 시행령 제95조의2에 처음 규정되었다가 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구 예산회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제92조에 규정되었다. 이후 1995. 1. 5. 제정된 국가계약법과 1995. 7. 6. 제정된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그 내용이 반영되었다.

 

예산회계법의 입법자료에 기재된 제안이유에 따르면, 위 규정은 중소업자와 계약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다. 예산회계법 시행령 제95조의2는 처음에는 ‘계약금액을 조정하여 지급할 수 있다’고 하여 재량적 규정 형태로 되어 있었으나, 국가의 계약금액 조정 기피 사례를 방지할 목적으로 1983. 3. 28. 대통령령 제11081호로 개정된 예산회계법 시행령 제95조의2는 ‘당초의 계약금액에서 조정한다’고 하여 재량의 여지가 없는 강행적 의무 부과 형태로 문언이 변경되었다. 이후 예산회계법과 국가계약법에도 위와 같은 강행적 의무 부과 형태의 문언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입법 연혁을 살펴보면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국가의 계약담당공무원에게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면 재량의 여지를 두지 않고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 의무를 부과하는 강행규정으로서 그 주된 목적은 계약의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6)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 제7항은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계약금액 조정요건이 성립된 경우에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였다. 이는 해외에서 자재 등을 들여와 물품을 공급할 경우 물가변동에는 환율변동으로 인한 것도 포함되어 있어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계약금액 조정 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도 계약금액의 조정의무가 발생함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규정한 것이다. 만일 환율변동에 따른 가격변동에 대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고 정하거나 처음부터 위와 같은 규정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특히 국가계약법 시행령 부칙 제2조를 주목하여야 한다. 이 부칙 규정은 “제64조 제7항의 개정규정은 이 영 시행 당시 이행 중인 계약으로서 이 영 시행 전에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계약금액 조정요건이 성립된 경우에도 적용된다.”라고 정하고 있다. 위 제64조 제7항이 계약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속규정 또는 임의규정이라면 부칙 규정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아도 위 두 조항에서 정하고 있는 ‘물가변동 또는 환율변동(이하 이 둘을 포함하여 ‘물가변동 등’이라 한다)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 규정’은 강행규정이고, 이를 위반한 계약 조항은 무효로 보아야 한다.

 

(7) 계약상대방이 예측하기 어려운 물가변동이 있을 때 계약상대방으로 하여금 손실을 감수하고 당초 약정한 계약금액으로 이행하도록 하는 것은 계약이행을 포기하여 이행이 중단되거나 불완전 이행 등 계약이행의 내용이 부실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공공계약의 이행 중단이나 부실화로 말미암아 계약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공공의 목적이 좌절되거나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 더욱 큰 사회적 비용이 들 수 있음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국가나 계약상대방이 물가변동에 대비하거나 환 헤징 등 환율변동에 따른 손실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개별적인 조치를 취하였는지 아닌지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물가변동에 따라 계약금액을 합리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계약이 중단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계약관계를 수정하게 한 것이다.

만일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이 단속규정에 불과하다는 다수의견에 따르면 계약담당공무원은 물가상승이 예상되는 경우 사실상 언제든지 이러한 조정을 배제하는 특약을 추가할 수 있다. 더구나 계약담당공무원은 거래상 우월한 지위에서 계약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고 계약상대방은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계약 자체를 계약상대방이 수용하든지 아니면 거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배제하고자 하는 특약을 정하고자 하는 유인은 더욱 강해진다. 다수의견은 법해석을 통하여 국가의 계약금액 조정 기피를 용인해 줌으로써 입법자의 의도와 달리 1983. 3. 28. 대통령령 개정 이전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8) 국가나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는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공공계약의 특성상 환율 하락 등으로 물가가 떨어질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내용으로 계약금액을 하향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경우 계약금액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한다면 계약상대방이 좀 더 저렴하게 자재 등을 조달할 수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부당하게 과다한 예산을 집행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약담당공무원은 이러한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을 조정할 의무가 있고,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을 위반하여 계약금액 조정을 포기하거나 고정가격으로 약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다수의견에 따르면 이 경우에도 계약담당공무원이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을 위반하여 계약금액의 조정을 포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되어 부당하다.

 

(9) 국가기관은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 규정이 강행규정이라고 유권해석을 하였다. 기획재정부는 국가기관이 체결하는 공사계약에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은 발주기관과 계약상대방의 의무사항으로 규정되어 있어 계약당사자 사이에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을 배제하는 특약을 정하는 것은 법령의 규정에 위배된다고 유권해석을 하였다(2007. 6. 19. 회제41301-622). 또한 물가변동 적용 대가의 산정은 계약금액 중 조정기준일 이후에 이행되어야 하는 품목 또는 비목 전체를 대상으로 하므로, 일부 품목을 물가변동 산정에서 제외하는 특약은 무효라는 유권해석을 하였다(2007. 6. 19. 회제41301-131). 그 후 조달청도 같은 내용으로 유권해석을 하였다. 공공계약을 체결하는 다수의 계약상대방은 이러한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법률관계를 형성해 왔다.

다수의견은 법률규정에 충실한 유권해석을 통하여 30년(환율변동의 경우 9년) 넘게 정착되어 온 공공계약 시장질서에 예기치 않은 충격을 줌으로써 혼란을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10) 대법원 2003. 8. 22. 선고 2003다318 판결은 계약금액 고정특약이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따른 것으로서 국가계약법 제19조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판결은 국가가 국제부흥개발은행(Th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이하 ‘IBRD’라 한다)으로부터 차관을 받아 그 재원으로 국제입찰에 따라 외자물품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액 고정특약이 포함된 IBRD 발행의 표준입찰서류(Standard Bidding Documents)를 기준으로 계약조건을 정한 사안에서, 구 외자구매계약규정(1996. 12. 31. 대통령령 제15187호로 폐지되기 전의 것) 제7조, 제11조가 외자구매입찰에서 정부에 유리하거나 상관례가 있는 경우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계약금액 고정특약을 유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구 외자구매계약규정은 ‘외자구매의 원활을 기하기 위하여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대한 특례를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제1조). 따라서 위 판결은 위와 같은 특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공공계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11)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국가계약법령과 관계 법령에 규정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 또는 조건을 정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공공계약에서 정한 특약 또는 조건이 계약상대방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경우 그 특약이나 조건은 효력이 없다.

 

위 규정은 일반법규의 성격을 갖고 있고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특별법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데도 이를 배제하도록 약정한 경우에는 그 특약은 무효이고 이 규정에 따라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한다. 물론 이 요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를 위반하는 특약이나 조건은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국가 등의 계약담당공무원이 입찰안내서 등을 통하여 계약상대방에게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하였다면, 그 자체로 국가 등이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여 국가계약법 제19조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 제1항, 제7항에서 정한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에 관한 계약상대방의 계약상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를 부당하게 제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라.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원심판결을 살펴본다. 원심은 국가계약법 제19조가 국가와 사인 간의 계약관계에서 관계 공무원이 지켜야 할 계약사무처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환율변동을 포함한 물가변동의 경우에도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기로 한 이 사건 공사계약특수조건(Ⅱ) 제15조를 무효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국가계약법상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여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음을 밝힌다.

 

6.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창석의 보충의견

가. 국가계약법 제19조는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공사·제조·용역 기타 국고의 부담이 되는 계약을 체결한 다음 물가의 변동, 설계변경 기타 계약내용의 변경으로 인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라고 하여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위 규정에서 계약금액 조정의 원인이 되는 ‘물가의 변동’에는 계약금액을 구성하는 각종 품목 또는 비목의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하락하는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위 규정은 계약상대자에게 이익이 되는 증액조정만이 아니라 계약상대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감액조정도 예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국가계약법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주된 목적은 계약상대자의 보호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예측하지 못한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당초 약정된 계약금액에 따른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의무이행을 고수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부실한 의무이행을 막아 공공계약의 목적 달성에 지장이 초래되는 것을 방지하고, 다른 한편 물가하락의 경우에는 계약금액을 감액함으로써 예산을 절약하기 위한 국가 등의 필요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가의 변동으로 인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는 문언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국가계약법 제19조의 수범자로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만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함으로써 계약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제1조)는 국가계약법의 입법 목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계약법은 제19조와 다른 내용으로 체결된 계약의 효력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아니하였다.

또한 국가계약법 제5조 제1항은 “계약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되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 등을 당사자로 하는 계약도 근본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되는 사법상 계약임을 확인하는 한편, 계약담당공무원 등이 지켜야 할 사항으로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에 대하여 우월한 입장에서 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국가계약법 제19조를 계약상대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으로 해석할 수는 없고, 결국 위 조항을 계약상대자에 대하여도 직접적인 효력을 갖는 강행규정으로 해석하여야 할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비록 계약상대자의 보호가 입법의 동기가 되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국가계약법 제19조의 규정내용은 물론 국가계약법 전체의 규정내용과 체계에 비추어 그러한 입법동기만으로 위와 달리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국가계약법 제19조를 계약상대자에 대하여도 직접적인 효력을 갖는 강행규정으로 해석한다면,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된 사법상 계약관계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국가 등이 개입하여 가격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되며, 이는 아래와 같은 헌법적인 문제점을 야기한다.

 

나.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행복추구권에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포함되며,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부터 사적 자치의 원칙이 파생된다. 또한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하여 우리나라의 경제 질서가 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사적 자치의 원칙은 시장경제질서의 기초가 되는 헌법상의 원리이다. 이러한 사적 자치의 원칙이 법률행위의 영역에서 나타난 형태인 계약자유의 원칙은 계약의 체결 여부, 계약의 상대방, 계약의 방식과 내용 등을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로 결정하는 자유를 말한다. 이는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저마다 자유로운 경쟁 아래 최적의 계약조건을 탐색하고 자신의 조건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 끝에 서로 간에 의사가 합치되는 지점을 찾아낸 경우 그 지점에서 계약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효율적인 의사결정 방법이 된다는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서, 각자의 의사결정으로 인한 이익 또는 불이익을 스스로 향유 또는 부담하도록 하는 자기책임 원칙의 전제조건이 된다.

물론 사적 자치의 원칙 또는 계약자유의 원칙은 무제한의 절대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공공복리 또는 정의나 형평의 관념 등에 기초하여 제한되거나 제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질서 아래에서 국가의 개입은 경제활동을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경제적 효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거기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에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국가의 개입이 언제나 효율성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계약자유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공공복리 또는 정의나 형평의 관념에 비추어 정당화될 수 없는 예외적인 사정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상황임에도, 계약의 본질적 부분인 급부와 반대급부의 등가관계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통제라는 방법을 통하여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이는 사적 자치를 근본적으로 허무는 것이어서 우리의 헌법질서 아래에서 쉽사리 정당화될 수 없다.

 

다. 공공계약도 기본적으로 사법상 계약이므로 계약당사자가 서로 대등한 지위에서 물가변동의 개연성을 비롯한 다양한 위험부담을 저울질하여 물품이나 용역의 대금을 정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계약법령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기로 합의하였다면, 다른 사법상 계약과 달리 한쪽 당사자가 국가 등이라는 이유만으로 위와 같은 계약금액에 관한 합의를 무효로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국가계약법령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당사자의 합의로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지 않고 반대의견과 같이 계약상대자에 대하여도 직접적인 효력을 갖는 강행규정으로 해석할 경우 개별 계약의 구체적 특성이나 약정의 내용 등과 무관하게 언제나 일률적으로 위 조항이 적용됨으로써 계약의 목적이나 위험의 합리적 분배 등 제반 사정에 대한 심사숙고 끝에 당사자가 내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국가 등이 함부로 무효로 돌리는 것이 된다. 이는 사적 자치의 핵심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4조는 품목조정률이나 지수조정률이 100분의 3 이상 증감된 때 계약금액을 조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단일 품목을 전부 수입하여 구매하는 경우를 가정한다면, 환율의 등락폭이 3% 이상이 되면 계약금액을 조정하게 되는 것이다. 3% 정도의 환율등락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그때마다 계약금액의 조정이 이루어져야 하고 법원이 개입하여야 한다면 종국적으로 당사자에 의한 가격결정이 법원에 의한 가격결정으로 대체된다. 이와 같은 일이 계속된다면 공공계약의 상대자로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수단을 강구하거나 비용을 절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유인이 없으므로, 국가 등이 아닌 다른 거래상대자와의 사법상 계약에서와 달리 비효율적이고 방만하게 업무를 처리하게 되기 쉽다. 이는 국가 등의 재정부담 증가와 기업 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오며, 궁극적으로 왜곡된 자원의 배분으로 이어지고 경제의 활력이 위축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라. 개별적·구체적인 사안에서 계약상대자의 보호와 계약정의의 실현에 대한 요청은 반대의견과 같은 위헌적인 해석을 따르지 아니하더라도, 다수의견에서 살펴본 것처럼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국가계약법령 및 관계 법령에 규정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 또는 조건을 정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된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에 관한 대법원의 해석에 근거하여 통제를 하여도 충분히 충족될 수 있다.

 

마. 헌법은 최고규범으로서 법률해석의 기준이 되므로 어떠한 법률조항에 대하여 그 문언상 위헌적인 해석과 합헌적인 해석의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는 경우 법원으로서는 마땅히 위헌적인 해석을 배제하고 합헌적인 해석을 함으로써 가능한 한 법률조항을 유효하게 유지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반대의견은 위헌적인 해석의 여지가 있으므로 따를 수 없고 합헌적인 해석으로 이해되는 다수의견에 따르고자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이상과 같이 보충의견으로 밝혀둔다.

 

7.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조희대의 보충의견

가. (1)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거나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 규정에 위반하여 법률행위가 행하여진 경우에 그 법률행위가 무효인지 여부는 당해 규정이 가지는 넓은 의미의 법률효과에 관한 문제로서 그 규정의 해석에 따라 정해진다. 그 법률행위의 무효 여부에 관하여 명문의 규정이 있다면 당연히 이에 따라야 할 것이나, 명문의 규정이 없다면 그 의무규정 또는 금지규정의 목적과 의미를 고려하여 그 무효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08다75119 판결 참조). 이와 같이 그 법률행위의 유·무효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경우 그 법률행위의 무효 여부는 해당 법률의 해석 문제로서 법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법원이 그 법률행위를 유효라고 판단하더라도, 이는 법질서 내에서 법원에 주어진 법률 해석 권한에 기초하여 판단한 것으로서, 그러한 판단이 법질서의 모순을 초래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종래 의무규정 또는 금지규정에 위반되는 법률행위의 사법상(사법상) 효력을 일률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 태도를 유지하여 왔다. 대법원이 해당 규정의 해석에 따라 그 법률행위의 사법상 효력을 인정한 사례는 많이 있다(대법원 1987. 2. 10. 선고 86다카1288 판결, 대법원 1994. 10. 28. 선고 94다28604 판결, 대법원 1996. 8. 23. 선고 94다38199 판결, 대법원 1997. 8. 26. 선고 96다36753 판결, 대법원 2000. 7. 28. 선고 2000다20434 판결, 대법원 2000. 11. 14. 선고 2000다38817 판결, 대법원 2001. 6. 12. 선고 2001다18940 판결, 대법원 2003. 11. 27. 선고 2003다5337 판결, 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다259677 판결 등 참조).

 

(2) 국가계약법 제19조는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공사·제조·용역 기타 국고의 부담이 되는 계약을 체결한 다음 물가의 변동, 설계변경 기타 계약내용의 변경으로 인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위 조항이 ‘조정할 수 있다’는 문구 대신 ‘조정한다’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위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약정을 무효라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구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1995. 1. 5. 법률 제486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6조는 원사업자가 제조 등의 위탁을 한 후에 발주자로부터 설계변경 또는 경제상황의 변동 등의 이유로 추가금액을 지급받는 경우 동일한 사유로 목적물의 완성에 추가비용이 소요되는 때에는 그가 받은 추가금액의 내용과 비율에 따라 ‘하도급대금을 증액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대법원은 위 문구에도 불구하고 위 조항에 위반된 계약의 사법상 효력을 인정하였다(대법원 2000. 7. 28. 선고 2000다20434 판결 참조).

 

(3)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국가계약법령과 관계 법령에 규정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 또는 조건을 정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위 조항은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제한하는 특약 또는 조건을 정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 또는 조건을 정하는 행위만을 금지하고 있다. 대법원은, 국가계약법령의 규정과 다른 내용의 약정을 체결한 경우 그 약정이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인지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불이익 발생의 가능성, 전체 계약에 미치는 영향, 당사자들 사이의 계약체결과정, 관계 법령의 규정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2다15695 판결,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5다206270, 206287 판결 참조).

 

(4)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환율변동의 경우 전문가들조차 그 방향성을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므로, 환율변동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을 하지 않기로 하는 약정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는 계약 당시 당사자 쌍방 모두 알기 어렵다. 또한 위 배제 약정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계약상대자에게 부담시키는 결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므로, 계약상대자로서는 그 회피 수단의 사용 여부 및 그 비용 등을 고려하여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더라도, 계약담당공무원이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거나 계약금액 조정의 책무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 (1) 법률이 특정 사안과 관련하여 하위 법령에 위임을 한 경우에 모법의 위임범위를 확정하거나 하위 법령이 위임의 한계를 준수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해당 법률 규정의 입법 목적과 규정 내용, 규정의 체계, 다른 규정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위임 규정 자체에서 그 의미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여 위임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도 그 문언적 의미의 한계를 벗어났는지, 하위 법령의 내용이 모법 자체로부터 그 위임된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속하는지, 수권 규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의미를 넘어 그 범위를 확장하거나 축소하여서 위임 내용을 구체화하는 단계를 벗어나 새로운 입법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2. 12. 20. 선고 2011두30878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2두2380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2) 국가계약법 제19조는 물가의 변동, 설계변경 기타 계약내용의 변동을 계약금액 조정 사유로 특정하면서 그 조정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다. 이어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 제1항 전문(전문) 및 제1호, 제2호는 위 법률조항의 위임에 따라 품목조정률이나 지수조정률이 100분의 3 이상 증감된 때라는 계약금액 조정의 기준을,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4조는 위 시행령의 위임에 따라 품목조정률과 지수조정률의 산정방법 등을 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규정의 형식과 내용, 체계 및 취지에 비추어 보면, 국가계약법 제19조의 수권을 받은 시행령에 정해질 내용은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기준 및 방식에 관한 것이라고 예상될 뿐, 환율변동이라는 계약금액 조정 사유를 정하는 내용까지 규정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환율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사유를 법률에 규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거나, 세부적·기술적·가변적인 사항이어서 이를 법률의 형식으로 규정하기에 부적절하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 제7항으로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하여 제1항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요건이 성립된 경우에는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라는 규정을 신설한 것은 모법조항의 위임 없이 이루어진 것이거나 모법조항의 위임범위를 벗어난 것이어서 그 효력이나 구속력을 인정하기 어렵다.

 

(3) 다수의견은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 제7항의 효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한 계약금액의 조정을 배제하는 이 사건 특약이 유효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 제7항은 무효이므로, 더더욱 이 사건 특약은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점에서 보더라도 원심이 환율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을 구하는 이 사건 청구를 기각한 데에 무슨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할 수가 없다.

 

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대법원장   김명수(재판장)        대법관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 김창석 김신 조희대(주심)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조재연 박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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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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