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5. 6. 24. 선고 2014다231224 판결
[예금][공2015하,1043]
【판시사항】
갑이 인감도장에 을 은행 예금계좌의 비밀번호를 표시하여 놓았고 병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예금인출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는데, 정이 병 등과 공모하여 갑의 주민등록증 등을 위조하고 무로 하여금 갑을 사칭하도록 하여 갑 명의의 예금통장을 재발급받아 인감을 변경한 후 예금을 인출한 사안에서, 갑의 행위가 정 등의 사기행위와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을 은행에 대하여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갑이 인감도장에 을 은행 예금계좌의 비밀번호를 표시하여 놓았고 병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예금인출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는데, 정이 병 등과 공모하여 갑의 주민등록증 등을 위조하고 무로 하여금 갑을 사칭하도록 하여 갑 명의의 예금통장을 재발급받아 인감을 변경한 후 예금을 인출한 사안에서, 갑이 다른 사람에게 예금인출 심부름을 시킨 일이 있다거나 인감도장에 비밀번호를 표시해 두는 등의 행위를 하였더라도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정 등이 사기행위를 저지를 것으로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위 사기행위는 을 은행이 거래상대방의 본인확인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로 인하여 초래되었다고 보일 뿐이므로 을 은행이 입은 손해와 갑의 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데도, 갑의 행위가 정 등의 사기행위와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을 은행에 대하여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전 문】
【원고, 상고인 겸 피상고인】 원고
【피고, 피상고인 겸 상고인】 농협은행 주식회사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4. 10. 23. 선고 2014나2009500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경과한 후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피고의 상고이유 제1, 2점에 관하여
원심은 제1심판결 이유를 인용하여 이 사건의 경우 예금지급청구자에게 정당한 변제수령권한이 없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으므로 피고에게 예금주인 원고의 의사를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예금지급청구자의 정당한 예금인출권한 여부를 조사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예금지급청구자에게 정당한 예금인출권한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예금을 지급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 예금지급이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관련 법리에 비추어 기록을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2. 원고의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가. 수인이 공동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민법 제760조 제1항의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각 행위가 독립하여 불법행위의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객관적으로 관련되고 공동하여 위법하게 피해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0다102755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민법 제760조 제3항은 불법행위의 방조자를 공동불법행위자로 보아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다. 방조는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여 과실을 원칙적으로 고의와 동일시하는 민사법의 영역에서는 과실에 의한 방조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경우의 과실의 내용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말하고,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자로서의 책임을 지우려면 방조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과실에 의한 행위가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경우라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과실에 의한 방조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 방지를 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3다91597 판결, 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2다84707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 및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 등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원고는 2002. 11. 15. 피고 남서초지점에 그 명의로 예금계좌(계좌번호 생략, 이하 ‘이 사건 예금계좌’라고 한다)를 개설하여 사용하였다. 원고는 82세 여성으로 자신의 기억력 감퇴를 우려하여 인감도장에 예금계좌의 비밀번호를 표시하여 놓았다. 원고는 자신의 집사라 자칭하는 소외 1과 평소 자주 드나드는 다방의 주인인 소외 2에게 가끔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예금인출의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었다.
(2) 소외 3은 소외 1을 통하여 이 사건 예금계좌에 6억 원 이상의 예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소외 1, 일명 김사장 및 성명불상자(이하 ‘소외 3 등’이라고 한다)와 원고 모르게 위 예금을 인출하기로 공모하였다. 그리하여 소외 3은 소외 1로부터 원고의 주소, 주민등록번호, 이 사건 예금계좌의 잔고와 계좌번호의 일부가 표시된 현금자동인출기의 거래명세표 및 비밀번호를 건네받고, 김사장으로 하여금 원고와 비슷한 연령의 여자 사진을 부착하고 인적사항 등 그 밖의 사항은 원고의 주민등록증과 동일하게 기재하는 방법으로 원고의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다음, 원고 명의의 휴대전화가입신청서를 위조하여 원고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였다.
(3) 소외 3은 2012. 4. 2. 성명불상자로 하여금 원고를 사칭하도록 하며 그를 대동한 채 남양주지점을 방문하여 원고 명의의 이 사건 예금통장 및 인감의 분실신고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소외 3과 성명불상자가 피고 직원에게 분실한 예금계좌의 계좌번호 일부를 알지 못한다고 하자 그 직원은 의심 없이 계좌번호를 알려주었고, 소외 3과 성명불상자는 통장을 재발급받아 인감을 변경하였으며, 곧바로 위 휴대전화를 이용한 텔레뱅킹을 신청하였다. 이어서 소외 3 등은 그날 서울 양재동 소재 피고 AT센터지점에 가서 변경된 인감을 이용하여 이 사건 예금계좌에서 360,000,000원을 인출하고, 그날부터 2012. 5. 19.까지 사이에 텔레뱅킹을 이용하여 총 20회에 걸쳐 이 사건 예금계좌에서 286,000,000원을 인출하는 등 합계 646,000,000원을 인출하였다(이하 ‘이 사건 사기행위’라고 한다).
다. (1) 원심은, 금융거래의 전형성, 대량성 등에 비추어 통상적인 신분확인절차를 거치거나 비밀번호 등을 알고 있는 이용자에 대하여 금융기관이 추가적인 신분확인절차를 요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금융거래의 이용자로서도 금융거래정보 및 개인정보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여 위와 같은 정보가 함부로 노출됨으로써 발생하는 금융기관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전제한 다음, 앞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원고에게는 자신의 예금통장·인감·비밀번호 등의 관리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고 이러한 원고의 과실과 소외 3 등의 이 사건 사기행위는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피고에 대하여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하므로 피고는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원고의 예금반환채권과 상계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2)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예금인출 심부름을 시킨 일이 있다거나 인감도장에 비밀번호를 표시해 두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원고가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소외 3 등이 이 사건 사기행위를 저지를 것으로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이 사건 사기행위는 소외 3 등이 원고의 주민등록증 등을 위조하고 성명불상자를 원고로 사칭하게 하여 예금통장 및 인감의 분실신고를 한 후 피고로부터 예금통장을 재발급받고 인감을 변경하자마자 당일 거액의 예금을 인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거래상대방의 본인확인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로 인하여 초래되었다고 보일 뿐이므로 피고가 입은 손해와 원고의 위 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의 행위는 소외 3 등의 이 사건 사기행위와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피고에 대하여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과실에 의한 방조로 인한 공동불법행위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그러므로 원고와 피고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