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판례】
【전 문】
【원고, 피상고인】 비엔케이캐피탈 주식회사
【피고, 상고인】 피고(법정대리인 한정후견인 ○○○)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안 개요
원심판결 이유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는 2015. 7. 6.경 피고에게 굴삭기(‘굴착기’라고도 한다) 구입자금으로 8,800만 원을 대출하고(이하 ‘이 사건 대출약정’이라 한다), 대출금 중 인지대를 공제한 8,796만 5,000원을 굴삭기 공급자에게 직접 지급하였다.
나. 피고가 대출금채무를 연체하자,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대출원리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이 사건 대출약정 당시 의사능력이 없었으므로 이 사건 대출약정은 무효라고 다투었다.
2. 원심판단
원심은 이 사건 대출약정 당시 피고가 인지·판단능력이 현저히 결여되어 독자적으로 자기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의사무능력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고의 의사무능력 주장을 배척하였다.
3. 대법원 판단
가. 의사능력이란 자기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정상적인 인식력과 예기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나 지능을 말한다. 의사능력 유무는 구체적인 법률행위와 관련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고(대법원 2002. 10. 11. 선고 2001다10113 판결 참조), 특히 어떤 법률행위가 그 일상적인 의미만을 이해해서는 알기 어려운 특별한 법률적 의미나 효과가 부여되어 있는 경우 의사능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의 일상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의미나 효과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6다29358 판결, 대법원 2009. 1. 15. 선고 2008다58367 판결 등 참조).
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2항 제2호,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 제1항 [별표 1] 제6호,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제2조 제1항 [별표 1] 제6호에 따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능지수가 70 이하인 사람은 교육을 통한 사회적·직업적 재활이 가능하더라도 지적장애인으로서 위 법령에 따른 보호의 대상이 된다. 지적장애인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의학적 질병이나 신체적 이상이 드러나지 않아 사회 일반인이 보았을 때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반면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이 장애인복지법령에 따라 지적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았다거나 등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의사능력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의사능력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 단순히 그 외관이나 피상적인 언행만을 근거로 의사능력을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되고, 의학적 진단이나 감정 등을 통해 확인되는 지적장애의 정도를 고려해서 법률행위의 구체적인 내용과 난이도, 그에 따라 부과되는 책임의 중대성 등에 비추어 볼 때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이 과연 법률행위의 일상적 의미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의미나 효과를 이해할 수 있는지, 법률행위가 이루어지게 된 동기나 경위 등에 비추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정이 존재하는지 등을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나. 원심판결 이유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사정을 알 수 있다.
(1) 피고는 2005. 10. 12. 지적장애 3급의 장애인으로 등록하였다. 피고는 2013. 5. 20. ‘지능지수 70, 사회발달연령 7세 8개월, 사회성숙지수 43’의 장애진단을 받았다.
(2) 이 사건 대출약정 이후 피고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가 청구되어(사건번호 생략) 2017. 1. 18. 피고에 대해 한정후견이 개시되었다. 그 심판 절차에서 2016. 10. 31.부터 2016. 11. 24.까지 이루어진 피고에 대한 정신상태 감정 결과 ‘지능지수 52, 사회지수 50(사회연령 9세)’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학습이나 문제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지적능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사회 적응 수준이 해당 연령에 비해 매우 부족하고,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비합리적 방식의 의사결정 가능성이 높아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 감정 결과의 내용과 그 감정 시기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대출약정 당시 피고의 지능지수와 사회적 성숙도 역시 위 감정 당시와 비슷한 정도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3) 이 사건 대출약정의 대출금은 8,800만 원으로서 결코 소액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사건 대출약정은 굴삭기 구입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서 굴삭기는 실질적으로 대출금채무의 담보가 되고 대출금은 굴삭기 매도인에게 직접 지급되는데, 이와 같은 대출 구조와 내용은 피고의 당시 지적능력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볼 수 있다.
(4) 원고는 피고가 굴삭기의 실수요자라고 보아 이 사건 대출을 한 것이고, 증빙자료로서 피고의 굴삭기운전자격증을 제출받았으나, 굴삭기운전자격증은 이후 위조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사건 대출약정 당시 피고의 지적능력에 비추어 피고가 굴삭기를 운전할 능력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 대출금은 굴삭기 공급자에게 직접 지급되어 피고가 이를 받은 적이 없는데도, 피고가 굴삭기운전자격증을 위조하면서까지 이 사건 대출약정을 할 동기를 찾기 어렵다. 이와 같이 이 사건 대출약정의 체결 경위에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오히려 제3자가 대출금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 피고를 이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다. 이러한 사정을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지적장애인인 피고가 이 사건 대출약정의 법률적인 의미나 효과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피고는 이 사건 대출약정 당시 의사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대출약정은 무효라고 볼 여지가 많다.
그런데 원심은 피고가 이 사건 대출약정 당시 인지·판단능력이 현저히 결여되어 독자적으로 자기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고의 의사무능력 주장을 배척하였다. 원심판결은 지적장애인의 의사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4. 결론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